Page 29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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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고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나의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작은 도전에도 불처럼 화를 내고 헛된 칭찬에도 미친 듯 기뻐한다. 그렇지
             만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나와 모든 대상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의 내외적

             현상들은 인연의 조합일 뿐이다. 5온, 12처, 18계가 모두 그렇다.

               우리 존재는 분명히 정신적, 물질적 요소인 5온의 임시적 결합이다. 그
             런데 이 5온의 각각에, 혹은 그 결합체에 나라고 부를 실체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편 우리 존재는 눈과 귀와 코와 같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

             의 지각 활동으로 그 존재성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 여섯 가지 주관적인

             감각기관에 우리 존재를 지배하는 주재자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양과
             소리와 향기 등의 여섯 가지 객관적인 대상에 별도의 주재자가 머무는 것
             일까? 모두 그렇지 않다. 이 5온과 12처(6근+6경)에는 주재자가 없다. 그렇

             다면 내부의 주관적 감각기관과 외부의 객관적 대상이 만나 인식활동이 일

             어나는 자리가 신령한 주재자가 존재하는 곳일까? 역시 그렇지 않다. 이
             것들은 18계가 모두 공하여 실체가 없으며 연기적 생멸이 일어나는 현장
             일 뿐이다.




                피노키오의 배 먹기와 불교공부


               그렇다면 연기적 생멸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냥 허공과 같은 빈자리

             에서 근거 없는 우연으로 일어나는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서 불교의 역사에는 연기적 생멸이 일어나는 원리, 혹은 그 본질을 제시하
             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이 뚜렷하다. 그중에서도 아뢰야연기론, 진여연기
             론, 법계연기론 등으로 전개되는 연기의 본성[性起]에 대한 대승불교의 논

             의는 선 수행자들에게 절대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당장 육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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