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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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상에 대한 집착이 없으므
로 그 참음은 더 이상 참음이 아
니게 된다. 그래서 중국의 인
순印順 법사 같은 이는 무생법인
의 인忍을 지혜로 해석하자고 제
안한다.
그러니까 대승보살의 실천 항
사진 3. 인순법사.
목인 인욕바라밀에는 ‘중생의
극기로서의 참음’, ‘불생불멸의 진리에 대한 믿음과 수용으로서의 참음’, ‘
불생불멸의 진리와 하나가 되는 지혜로서의 참음’이라는 여러 층의 참음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상호 간에 동질성과 차별성을 갖지만 결국 앞
의 두 참음은 진짜 참음인 무생법인無生法忍으로 완성되어야 할 과정 중의
한 지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참음은 어떻게 실천하고 어떻게 성
취하는가? 그저 억누르고 참다 보면 저절로 참아지고, 또 그것이 저절로
체화되는가? 그렇지 않다. 억누르는 방식의 참음은 그 반발력을 강화하여
오히려 더 큰 희노애락의 발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참음이
생멸 없는 진여불성과 만나는 일을 지향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진여
불성이 무생무멸이므로 그것과 만나는 일 또한 무생무멸의 실천, 그러니
까 무심의 실천 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무생법인의 바른 의미
그래서 성철스님은 “망념이 멸진하면 이것이 무생이다.”는 말로 무생법
인의 전체 설법을 끌고 나간다. 여기에도 구경무심을 강조하는 성철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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