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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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타난 현장임을 확인하는 눈뜸이 일어나게 된다.


            인욕바라밀의 세 가지 차원




           그래서 이 공부는 자기 좋은 것만 골라 먹는 편식 취향을 거듭 내려놓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눈앞의 인연을 온전히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므로 참음[忍]을 주된 실천덕목으로 삼는다. 대승보살의 길로 제시된

          6바라밀에 인욕바라밀이 주된 실천항목으로 들어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인욕바라밀에도 표층과 중층과 심층의 층차가 있다. 먼저 자아
          중심의 편식 취향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누르거나 순화시키
          는 차원의 참음이 있다. 그리하여 자신을 해치는 일에 화내지 않고 자신을

          떠받드는 일에 기뻐하지 않는 실천을 한다. 이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여전

          히 해침과 떠받듦을 분별하는 자아가 남아 있다. 이것을 중생 차원의 참음
          이라는 뜻에서 중생인衆生忍이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일체의 생멸 현상이 불생불멸의 본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이치를 완전히 믿고 그것을 수용하는 데서 일어나는 참음이 있다. 법에 대

          한 완전한 믿음과 수용에서 나오는 참음이므로 이것을 법인法忍이라고 부
          른다. 중생 차원의 참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성취이다. 『불장경佛藏經』의
          비유에 의하면 법인을 성취하는 일은 ‘수미산 아래의 사대부주와 중간의 사

          왕천과 정상의 도리천을 모두 짊어지고 모기만 한 작은 발로 끝없는 계단을

          올라가 보다 상층의 색계범천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이 희유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무생무멸의 진리가 완전히 체화되어
          스스로 그 자체가 되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생무멸의 법과 하나가

          되는 이 일을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부른다. 무생법인을 증득하면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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