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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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 한 해 전인 1883년 9월에 유성종이 편찬한 『작비암시화昨非菴詩話』에
             발문을 청탁받았는데, 당시 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보광 유운[유성종] 선생은 부지런히 선을 행하면서도 명예를 가까

                  이할 마음이 없다라는 말을 내가 예전부터 들었기에 교류하고 싶
                  은 지가 오래되었다.… 선생은 평등한 마음으로 매우 온화한 기운
                  을 베풀고 가까이서 말을 하듯 사람들을 이끄는 책을 냈으니 진실

                  로 예전 사람들이 말하는 선한 사람이다. 춘추가 예순셋이지만, 안

                  색이 밝고 환하며 신체도 맑고 정정하시다. 내면에 쌓인 것이 밖으
                  로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다.”



               유성종은 자신도 선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선행을 실천할 수 있도

             록 권선서勸善書와 같은 책들을 편찬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데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무심옹無心翁이라는 자호도 사용
             했듯이, 죽음마저 무심해 보인다. 마치 달빛이 연못을 비추지만 물에 흔적

             을 남기지 않듯이.



                유성종 사후 유경종이 잇다



               유성종이 주도했던 정원사와 감로사 불서 간행도 그가 별세한 이후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유성종이 소장했던 책들은
             과연 누구에게 전해졌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단서는 1882년에 정원사에서
             간행하고자 했던 『원해서범願海西帆』 중 미간행된 4편이 필사된 유성종의

             수고본手稿本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현재 이 책은 고려대학교 도서관(육당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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