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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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3호 | 중국선 이야기 21 |     안사安史의  난(755∼763)  이후,  남

                                         양혜충南陽慧忠(?∼775)  국사는  본격
                                         적으로  ‘무정불성無情佛性’을  제창하

                                         였다. 혜충이 무정불성을 제창한 까
          조사선에 있어서                       닭은 전란 이후, 혼란한 민심을 통합

          불성론의 변용 4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임은 앞에서
                                         논한 바와 같다. 그러나 혜충이 무정

                                         불성을  제시했다고  해서  한순간에
          김진무 철학 박사
                                         남종선 전체가 이를 수용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석두

                                         희천石頭希遷(700∼790)은  ‘즉심즉불卽
                                         心卽佛’과 ‘무정불성無情佛性’을 혼용하

                                         고 있는데, 이는 점차 무정불성의 수
                                         용과정을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부처의 사다리를 밟으면

                                           무정에도 불성이 있다



           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이러한 과도기적인 상황은 마조도
           남경南京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일馬祖道一의 제자이며 백장청규百丈
           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 역
           임.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         淸規를 제정하여 선종을 독립시켰다
           구재단 학술연구 교수. 저서로 『중국불교
           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는  평가를  받는  백장회해百丈懷海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749∼814)가 “어떠한 것을 유정有情에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
           선』, 『조사선』 등이 있다.              불성이 없음이요, 무정無情에 불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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