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P. 55

이라도 멸滅함을 일으킴이 없으면 곧 식識을 벗어나 유무有無에 속하지 않
             는다. 분주히 보고 느끼지만 다만 들을 뿐, 그 정식情識의 집착이 없음이
                 3)
             다.” 라고 하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의할 만한 구절은 바로 “만약 부처의 사다리를 밟았다면 무

             정에도 불성이 있고, 만약 부처의 사다리를 아직 밟지 못하였다면 유정에
             도 불성이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는 불성이 유정에만 있는가, 아니
             면 무정에도 있음인가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의 사다리

             [佛階梯]’, 즉 ‘깨달음’의 체득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부처

             의 사다리’를 밟았다면, 굳이 유정과 무정에 불성의 유무를 논할 필요가 없
             다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말이다.



                유정과 무정에 모두 불성이 있다



               그렇지만 회창법난(842~845) 이후에는 명확하게 불성론이 변화하고 있
             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산성념首山省念(926~993)은 다음과 같은 임종

             게를 남기고 있다.



                  “백은白銀의 세계에 금색신金色身이니, ‘유정’과 ‘무정’이 함께 일진一
                  眞이네. 밝음과 어둠이 다할 때 둘 다 비추지 않으니, 해가 기운 오

                  후에야 전신全身을 보리라.”       4)





             3)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5, 「慧忠國師傳」(大正藏51, 244c), “如今一切動用之中, 但凡聖兩流都
                無少分起滅, 便是出識, 不屬有無, 熾然見覺, 只聞無其情識繫執.”
             4)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3, 「首山省念傳」(大正藏51, 305a), “白銀世界金色身, 情與非情共一
                眞. 明暗盡時俱不照, 日輪午後見全身.”


                                                                          53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