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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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普賢은 똥 푸는 사람[擔屎漢]이다.       12)


           사실 후기 조사선에 속하는 문헌에서는 이와 같은 문구들은 상당히 많

          이 찾을 수 있다. 이로부터 명확하게 ‘불성’의 물성화物性化를 볼 수 있으며,

          그 연원은 분명하게 『장자』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조사선의 장학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기 조사선의 선사상은 노장老莊과 같은 사상으로 귀결하는

          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표면적으로 상당히 유사하지만, 그 내면에 흐르

          는 논리는 결코 석존의 교의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회창법
          란’을 통해 국가권력에 의해 수많은 승려가 주살되었고, 수십만의 승려가
          환속 당했으며, 거의 5천에 가까운 사찰이 폐쇄되는 처참한 비극을 겪은

          후에는 아마도 통치자의 성향을 위배하는 사상을 제시하기는 힘들었을 것

          이다.
           더욱이 당唐이 망한 후에 오대五代 후주後周 세종世宗에 의해 다시 법란
          (955)을 겪게 되면서 중국불교는 가능한 통치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상의

          방향을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조사선도 역시 그 흐름을 따랐지만, 사상

          의 깊은 곳에 철저히 석존의 혜명慧命을 감추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를 이어서 후기 조사선, 즉 이른바 오가五家로 분화되는 분등선의 사상과
          그 흐름을 고찰하고자 한다.










          12)  [宋]普濟集, 『五燈會元』 卷7(卍續藏80, 143b), “這裏無祖無佛, 達磨是老臊胡, 釋迦老子是于屎撅,
             文殊普賢是擔屎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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