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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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인용문에서 무외가 두 명임을 전제하고 무외정오無畏丁
             午가 무외임을 주장하였다. 다산의 이러한 노력은 권2의 여러 곳을 통해
             볼 수 있다. 『만덕사지』는 이밖에도 제3 원환圓睆을 삼장의선三藏義璇으로

             규정하여 찬자 자홍은 “의선義璇은 반드시 원환圓睆의 표덕表德이지 두 사

             람이 아니다.”라고 하여 원환이 의선임을 강조하였다.
               다산은 진정국사 천책이 지은 『호산록湖山錄』에 정오가 쓴 발문 끝에 명
             기된 “불일보조정혜묘원진감대선사정오발佛日普照靜慧妙圓眞鑑大禪師丁午跋”

             을 사례로 들어 당시 승려들의 법호와 법명이 혼란의 여지가 많음을 전제

             하고 무외가 원묘를 3~4번째로 이은 정오임을 강조하였다. 다산은 박전
             지朴全之가 쓴 「영봉산용암사중창기靈鳳山龍巖寺重創記」, 『고려사高麗史』, 그
             리고 『동문선』에 수록된 정오의 시문詩文을 기초로 인용한 기록에 명시된

             무외국사가 정오임을 명시明示하고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정오丁午는 진감국사眞鑑國師이며, 정오는 법호法號인데 무외無畏라
                  는 두 자의 법호가 더 있다. 그러나 무외로 행세行世하였으므로 『동

                  문선東文選』에는 무외無畏는 있으나 정오는 없다. 『고려사』에 실린

                  박전지朴全之가 지은 「용암사기龍巖寺記」에도 털끝만큼의 차이가 없
                  으니 정오가 무외임이 확실하다. - 『만덕사지』 권2



               이밖에 찬자들은 “말류가 노무鹵莽하자 바로 무염국사를 조祖에 추대推

             戴하니 그 오류를 쉽게 가릴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다산은 “무
             염국사無染國師의 평생에 행동거지인 일동一動 일정一靜이 백월탑白月塔에 자
             세히 적혀 있는데, 강진의 만덕萬德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

             고 하여 만덕사와는 전연 인연이 없는 무염국사를 이전의 기록에서 만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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