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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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거나 대중이 많은
큰절 생활이 부담스러웠
고, 적지 않은 스트레스
였다. 그렇지만 옳은 일,
불교를 위하는 일, 대중
을 위하는 일에는 물러서
지 않았다. 그럴 때는 어
디에서 그런 기운이 나오
는지 정면 돌파했다. 봉
암사 제2결사가 그랬고,
봉암사 산판 문제의 해결
이 그러했다.
봉암사 정화 중 산판
문제를 마무리한 고우스
님은 새벽에 홀연히 떠나
사진 1. 고우스님이 공을 체험한 도장산 심원사 일주문.
깊은 산중인 농암 도장산
심원사로 갔다. 고우스님이 심원사에서 정진할 때 봉암사 주지 지유스님
도 오셨고, 또 대효스님도 왔다.
고우스님은 지유스님을 친형처럼 따랐고, 지유스님은 친동생처럼 아
꼈다. 고우스님과 대효스님도 마치 사이좋은 형제처럼 평생을 우의 있게
잘 지냈는데, 서로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였다. 심원사에서 정진하던 어
느 날 고우스님은 대효스님에게 봉암사의 일을 하면서 너무 힘들고 지쳤
다며 “어디 무인도 등대지기 자리가 없을까? 그런데 가서 살고 싶다.”고 하
셨다고 한다. 대효스님은 형님처럼 따르던 고우스님이 그런 말을 하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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