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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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임을 놓고자 하
                                                         였다. 봉암사 제2
                                                         결사를 성취한 도

                                                         반들은 다시 모여

                                                         누구를 주지로 할
                                                         것인가를 의논했
                                                         다. 수좌 중에 해

                                                         야  하는데,  당시

                                                         제대로 승적을 갖
                                                         추고 있는 스님이
                                                         법화스님밖에 없

                                                         었다.  이렇게  하
          사진 5. 1970년대 초 봉암사 조실로 모셔진 서옹스님.
                                                         여 자연스럽게 법
          화스님을 봉암사 새 주지로 하였다. 법화스님은 1947년 봉암사 결사 당시 한
          중심이었던 청담스님의 상좌였다.

           법화스님은 봉암사 주지를 맡자 고우스님 등 수좌 도반들과 상의하여 봉

          암사의 선풍을 진작하기 위해 서옹스님을 조실로 모셨다. 서옹西翁(1912 ~
          2003)스님은 백양사 만암스님의 전법제자로 일찍이 견성도인으로 인가 받
          은 대선지식이었다.

           서옹스님을 조실로 모시자 봉암사에는 선객들이 더 몰려들었다. 서옹스

          님은 봉암사에서 선풍을 진작하고자 보름에 한 번씩 ‘선어록의 왕’이라 불
          리는 『임제록臨濟錄』 강설을 하였다. 당대의 대선지식 서옹스님이 봉암사
          조실로 주석하며 법문을 하니 봉암사는 참선도량의 면모를 갖춰갔다. 선

          객들은 날이 갈수록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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