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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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아니라, 앞뒷면이 평평한 얇은
석판에 새긴 것들이다. 석불을 만든
돌은 이 산에서 채취한 것인데, 채석
장의 바위들을 얇은 석판의 형태로
켜 낼 수 있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
인다. 산등성이에는 거대한 불상을
만들려고 새겨놓은 다음 이를 켜 낼
수 없어 그대로 남아 있는 이른바 ‘와
불臥佛’이 있다. 이 거대한 불상을 새
긴 것은 와불이 아니고 거대한 불상
을 새기다가 암벽에서 떼어내지 못하
사진 2. 산등성이의 석불. 여 그대로 둔 것이다(사진 6).
손의 모양으로 보아 각각 비로자나불좌상과 석가여래불입상이다. 이 석
불을 뜯어내어 운주사에 새워 놓았다면 아마도 운주사의 중심이 되는 석
불이 되었을 것 같다. 그 모습이 땅에 누워 있기에 이를 두고 이 부처가 일
어나는 날이면 천지가 개벽한다느니 하는 온갖 잡설이 생겨났다. 근처 산
비탈에는 부처를 새기려고 바위를 잘라 뜯어낸 흔적도 분명하게 남아 있
고, 바위를 뜯어내려고 구멍을 뚫어 놓은 자국도 남아 있다.
운주사에 있는 다종다양한 모습의 불상과 석탑들의 양식으로 보아
12~13세기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 근거로는 고려시
대의 불상에는 이곳의 불상들과 비슷한 지방화된 양식들이 많이 등장하고,
탑의 양식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방형탑, 육각탑, 팔각탑, 모전계열 석
탑 또는 원형탑들이 건립된 것을 든다. 이렇게 되면, 신라의 운주화상이니,
거북이 바위를 날랐느니, 도선국사니 풍수니 천지개벽이니, 장길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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