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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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권經卷이나 책자에서 본 것뿐이다. 나는 그것을 묻지 않겠다. 그
                  대는 처음 부모의 태胎에서 갓 나와 아무것도 아직 알지 못했을 때
                  의 본분本分의 일을 한마디 일러보라. 내가 그대의 공부를 가늠하

                  려 하노라.”  1)



               이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자 의미가 깊은 한 편의 시詩입니다. 사람
             이 공부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헛똑똑이가 되고 맙니다. 위산은

             그것을 경계하고 향엄에게 남의 말이 아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 말을 해

             보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막 태어나 아무것도 모를 때의
             네 본래면목은 무엇인가를 말해 보라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모
             를 때 당신은 누구일까요?

               아무것도 모르면 언어도 없고 생각도 없어서 정체성은 물론 자아自我도

             없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다면 과연 당신은 누구일까요? 아무 생각도 없
             다면 우리는 에고가 없는 세계에 있게 됩니다. 에고가 없으면 쇼펜하우어
             가 말한 ‘자신을 망각한, 고뇌가 없는 관조’를 할 수 있습니다.  에고가 없
                                                                 2)
             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더 가벼운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것을 순수경험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는 것이 대단히 많았지만 헛똑똑이에 불과했던 향엄은 대답을 하지 못
             한 채 고개를 숙이고 오래 생각하다가 다시 이러쿵저러쿵 몇 마디 했으나

             모두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도를 일러 주실 것을 청하니, 위산은 이





             1)  『祖堂集』 卷第十九, “汝從前所有學,解以眼耳。於他人見聞及經卷冊子上,記得來者,吾不問
                汝。汝初從父母胞胎中出,未識東西時本分事,汝試道一句來,吾要記汝.”
             2)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 “자신을 망각한, 고뇌가 없는 관조로부터 우리는 멀어
                도 너무 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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