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1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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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도심에 자리 잡은 천년 고찰 봉은사.
산이 있고, 앞으로는 대강大江이 흐르는, 한양에서 산수풍광山水風光이 아
름다운 곳이기도 했다. 12칸의 정당正堂, 동서의 상방上房, 남쪽 누대樓臺,
8칸의 문회당文會堂, 장서각藏書閣, 물시계를 설치한 누각, 연못과 정자,
3중 계단의 화원, 숙소, 주방, 마구간 등을 갖춘 상당한 규모였는데, 임진
왜란壬辰倭亂 때 모두 잿더미로 사라졌다.
독서당제도는 성균관成均館 대제학大提學은 반드시 독서당 연찬의 경력
이 있어야만 했을 정도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제도였다. 세종 때의 사가독
서제에서 시작하여 1773년까지 약 350년 동안 장소를 옮겨다니던 독서당
에는 매회 평균 6~7명씩 모두 48차례에 걸쳐 선발한 320명의 인재가 배
출되었다. 초기에는 사찰 공간을 활용하다가 동호에 제대로 모습을 갖추
었는데, 결국 화마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 다시 새 공간을 찾아 운영되
다가 정조正祖(李祘, 1776~1800)때 규장각奎章閣이 만들어지면서 독서당제도
는 운영되지 않았다(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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