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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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 있다. 국문학자 이종묵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봉은사를 소재로 한
시詩 가운데는 16세기 무렵의 것이 가장 많고 수준도 높다고 한다(사진 3).
선릉의 능침사찰 봉은사
봉은사는 794년(원성왕元聖王 10)에 신라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한 견
성사見性寺가 그 시초라고 하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에 나오는 7대 성전사원成典寺院 중의 하나인 신라의 봉은사가 현재의 봉은
사와 동일한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그 후 고려시대 500년 동안 봉은사에
관한 자료는 현재 찾기 어렵다. 봉은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신라 이후 고
려 태조의 원당願堂으로 지은 개성開城의 봉은사 그리고 강화도의 봉은사
등 역사상 여럿 있었다.
기록으로 보면, 현재 서울 강남에 있는 봉은사는 1498년(연산군 4)에 성
종成宗(李娎, 1469~1494)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1462~1530)가
성종의 능인 선릉宣陵을 위하여 능의 동쪽에 있던 작은 절을 중창하여 능
침사찰陵寢寺刹로 삼고 절 이름을 봉은사라고 한 것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
인다. 성종의 아들인 연산군 때는 절에 왕패王牌를 하사하고, 전토田土가 없
는 봉은사에 각도의 절에서 거둔 세와 소금을 주기도 했다.
봉은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성종과 폐출廢黜 사사賜死된 폐비 윤씨 다
음 차례에 왕비가 된 정현황후를 안장한 선릉이 있다(사진 4). 그리고 그 가
까이에 정현왕후의 아들인 중종을 안장한 정릉靖陵이 있는데, 모두 유네스
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그 구역이 공원화되어 요즘은 많은 사람들
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사진 5). 중종으로 보자면 친부모와 같이 인근 묘
역에 묻혀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정현왕후가 폐비 윤씨의 아들을 키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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