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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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王后(1501~1565)는 독실한 불교신자답게 1551년(명종 6)에 양주 회암사檜巖
寺에 주석하던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1509~1565)화상을 도대선사都大禪師로
등용하여 봉은사의 주지로 삼고 불교의 중흥을 도모하였다. 보우화상의 사
상은 선교일체禪敎一體와 유불조화儒佛調和를 추구했다. 선종과 교종이 다
시 부활되어 봉은사는 선종의 수사찰首寺刹이 되고, 광릉에 있는 봉선사奉
先寺는 교종敎宗의 수사찰로 정해졌다(사진 6).
판선종사判禪宗事인 보우대화상은 당시 왕실의 강력한 지원 하에 불교
중흥을 주도하였는데, 1552년에는 300여 개의 사찰을 국가가 공인하는 정
찰淨刹로 정하고, 도첩제에 따라 2년 동안 승려 400여 명을 선발하고, 과
거시험에서 그간 폐지되었던 승과를 부활시켜 3년마다 실시하도록 하였
다. 현재 코엑스가 들어선 넓은 부지는 원래 봉은사의 땅이었는데, 명종 때
에 여기에서 승과시험을 실시하여 승과평僧科坪이라고 불렀다(사진 7).
이 승과가 부활되고 실시된 1552년의 승과시험에서 부용영관芙蓉靈觀
(1485~1571) 대사의 법맥을 이은 서산대사西山大師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화상이 급제하고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어 봉은사 주지를 지냈다.
그렇지만 양사兩司와 성균관 유생 등으로부터 양종과 승과를 폐지할 것을
상소하는 일이 줄기차게 반복되었다. 잠시 다른 장면을 보면, 명종이 즉위
한 해에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은 일본과 강화하고 병란에 대비
할 것을 내용으로 담은 상소를 올렸다. 어린 왕이 이를 귀담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종의 제1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1491~1515)가 인종仁宗(1544~1545)을 낳
고 사망하자 바로 이어 왕비가 된 사람이 문정왕후다. 오랫동안 아들이 없
다가 오매불망寤寐不忘 드디어 아들을 하나 낳았으니 그가 명종이 된다. 명
종이 12살 나이로 즉위하자 어머니가 사실상 나라를 다스렸다. 대윤大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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