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P. 54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이후, 영우를
시봉하며 15년을 위산에 머물렀으며,
그 후 대중들과 함께 왕망산王莽山에 주
석하였다. 건부乾符 6년(879)에 원주袁
州 앙산仰山(현 江西省 宜春市)에 머물자
학인들이 모여들어 ‘앙산혜적仰山慧寂’
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후에 홍주洪州
사진 2. 앙산혜적선사仰山慧寂禪師. 관음원觀音院에 머물며 학인들을 제접
하였고, 다시 동평東平으로 옮겼다. 혜적이 입적하기 전에 남긴 게송은 다
음과 같다.
“나이는 가득 찬 칠십칠로, 늙어지니 오늘이네. 성품에 맡겨 절로
오르내리니, 두 손으로 굽은 무릎을 부여잡네.[年滿七十七, 老去是今
日. 任性自浮沈, 兩手攀屈膝.]” 6)
“나이는 가득 찬 칠십칠로, 무상無常이 오늘에 있네. 일륜日輪이 정
오正午에 이르니, 두 손으로 굽은 무릎을 부여잡네.[年滿七十七, 無常
在今日. 日輪正當午, 兩手攀屈膝.]” 7)
앞의 게송은 『경덕전등록』에 실린 것이고, 뒤의 게송은 『앙산어록仰山語
錄』과 『오등회원』에 실린 것으로 약간 차이가 있다. 그러나 게송에서 몇 글
6) 앞의 책(大正藏51, 283c).
7) [明]語風圓信, 郭凝之編, 『袁州仰山慧寂禪師語錄』(大正藏47, 588a); [宋]普濟集, 『五燈會元』 卷9(卍
續藏80, 190c).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