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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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따라 찻잎을 약용으로, 식용으로, 혹은 음용으로 각기 다르게 이용하
             여 부르는 이름도 각기 달랐다.
               수양제隋煬帝는 605년에 광활한 중국 대륙을 편리하게 통치하기 위하여

             중국의 남북을 잇는 대운하大運河를 건설하였는데, 이 운하를 통해 따뜻한

             화남華南 지방에서 생산된 많은 차가 화북華北 지방으로 전해지면서 비로
             소 북쪽 지방 사람들도 차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당나라(618~907) 중기에 이르자 교통은 더욱 발달하였고, 그 이전의 단

             편적인 차문화도 차츰 대중적으로 보편화되면서 각 지방별로 부르던 수많

             은 차의 이름들은 결국 하나의 차나무라는 인식이 생겨 찻잎의 이름 중 가
             장 많이 사용했던 ‘荼’ 자의 한 획을 지워 ‘茶’자로 통일했으나 완전히 차茶
             로 대체되지는 못했다. 육우陸羽가 그의 저서 『차경茶經』에서 차茶, 가檟,

             설蔎, 명茗, 천荈 등 다섯 글자를 선택 정리함으로써, 9세기 중반이 되어서

             야 비로소 차茶라는 글자의 개념이 정립되어 오늘날까지 차茶로 불려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설선당蔎禪堂 정곡 선사는 ‘茶’자와 같이 쓰이는 글자 12자를 정리

             하고, 그중에서 찻잎을 따는 차례에 따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다茶’는 차나무, 찻싹 ‘다(차)’로 일찍 딴 차를 뜻하고,
                  ‘가檟’는 차나무 ‘가’로 두 번째 딴 차를 뜻하고,

                  ‘설蔎’은 세물차 ‘설’로 세 번째 딴 차를 뜻하고,

                  ‘명茗’은 늦게 딴 차 ‘명’으로 네 번째 딴 차를 뜻하고,
                  ‘천荈’은 늦꺾이 차, 센차 ‘천’으로 다섯 번째 딴 차를 뜻한다.



               한편, 불전에서는 알가[閼伽, arghya]라는 명칭이 여러 경전에 수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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