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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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에서 남극과 북극이라는 단 두 곳에서만 방향이 사라진다. 흥미롭
기는 하지만 예외적일 뿐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
렇지 않다. 보물은 아주 예외적인 지점에서 발견된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지점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인상적인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핀치새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진화했음을 확인한
것은 진화생물학이 출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어느 곳의 어느 생물이라
도 매 순간 진화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지는 이 변화를 감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지역에서 일어난 종의 분화를 관측하면
서, 생명의 진화가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됐다. 이는 생물
학은 물론 우리의 세계관까지 변화시킨 ‘진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우리는 모두 매 순간 변해 가는 무상無常한 존재지만 일상에서 이를 알
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병이나 죽음 등의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무상을 감
지한다. 그러나 무상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발생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
다. 우리 우주에서는 모든 존재가 연기緣起에 의해 나타나고 연기에 의해
사라지기 때문에, 무상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는 모두의 존재 양식이다.
오동잎이 떨어져야 가을이 왔음을
알고 매화가 펴야 봄이 왔음을 알지
만 계절은 항상 변한다.
행성과 위성의 운동을 제외하면
지동설과 천동설의 설명력은 같다.
상대성이론에서 말하듯이 모든 운동
이 상대적이므로 천구가 정지하고
지구가 회전하는 것은 지구가 정지 사진 4.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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