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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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이 진화하더라도 갈라파고스에 가지 않으면 이를 확인하기 어렵
             듯이, 어디에도 북쪽은 없지만 북극에 가지 않으면 북쪽이 없다는 것을 알아
             차리기 어렵다. 갈라파고스에서만 생명이 진화하는 게 아니듯이, 북극에서만

             북쪽이 없는 게 아니다. 상호 연관의 연기로 인하여 동서남북과 상하가 항상

             나타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도 동서남북과 상하는 본래 없다.


                우리는 명색名色으로 이루어진 세간世間에서 산다




               우리의 식識은 연기緣起로 나타나는 세계에 대해 이름과 형색을 부여한다.
             이게 12연기緣起의 명색名色이다. 우리의 식은 동서남북과 상하가 본래 없음
             에도 불구하고, 동서남북과 상하라는 명색을 만들어 낸다. 더럽거나 깨끗함

             이 본래 없어 불구부정不垢不淨인데도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명색을 만들어

             낸다. 동서남북과 상하,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 같은 모든 명색
             은 분별이다. 모두 우리의 분별하는 마음인 식이 만들어 낸 것이다.
               12연기에 의하면, 무명無明에 의지하여 행行이 나타난다. 행行은 무언가를

             조작하여 만들어 내려 한다. 이 행에 의지하여 식이 나타난다. 식이 행에 의

             지하므로, 식은 본래 없는 것을 조작하여 만들어 낸다. 이게 동서남북과 상하,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 같은 명색이다. 이렇게 행에 의지해 조작
             한 산물을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한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一切有爲法  일체의 유위법은
                  如夢幻泡影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如露亦如電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應作如是觀  응당 이렇게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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