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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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등이 있다.
               나카기리는 한국 미술사
             학의  길을  개척한  고유섭

             (1905~1944)과의 깊은 인연

             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회
             고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고유섭은 경성제대에서 미
                                        사진 1.  1933년 경성제대 교정에서 고유섭과 함께.
             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왼쪽에서 네 번째가 고유섭의 스승 우에노 나오테루 교
                                             수, 왼쪽에서 다섯 번째 고유섭, 맨 오른쪽이 나카기리 이
             1930년 4월부터 1933년 3              사오). 사진 인천일보.
             월까지 경성제대 미학미술사연구실의 조수로 있었는데, 이때 두 사람은 연
             구실의 동료였던 셈이다. 고유섭은 이후 개성박물관장이 되었지만 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긴 나카기리와의 교류는 계속되었다. 사후 20주년이 된

             1964년에 고유섭의 제자이자 동국대 교수였던 황수영의 의뢰를 받고 쓴
             「고유섭씨의 추억」이라는 글에서 나카기리는 그에 대한 기억과 관련된 일
             화를 다음과 같이 떠올리고 있다.




                  “내가 고유섭 씨를 알게 된 것은 경성제대 법문학부 미학미술사연
                  구실에 처음으로 근무를 시작한 1928년 4월의 일이었다. 그는 당
                  시 미학전공의 2학년 학생이었는데 조용하고 온화한 사람이었고

                  대인의 풍격이 몸에 배어 있었다. 친분을 가지면서 점점 그의 그윽

                  하고 고상한 사람됨에 매혹되었고 흉금을 터놓는 사이가 되면서
                  형제와 같은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다. … 그는 (콘라트) 피들러의 미
                  학사상에 관한 학위논문을 썼는데 정말로 달필인 원고에 놀랐고

                  조리가 통하는 논고에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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