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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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조계사 옛 정화기념관. 사진 법보신문.              사진 5.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서암스님.
          쇄신하였다. 먼저 조석 예불을 반드시 하고 절 공양을 하고 외부 식당 출

          입을 금했다. 또 조계사 방사의 텔레비전을 다 없애는 등 수행 도량다운 청

          규를 시행했다. 서암 총무원장을 비롯하여 소임 스님들이 직접 솔선수범
          하고 아침 일찍 도량 청소까지 직접 하니 불자들의 인식이 하루아침에 달
          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하여 조계사에 선방을 만들었다. 출가하여 산중에서 참선하던

          수좌들이 절 소임을 맡았으니 자연 선방이 필요했다. 또 조계종의 대표 사
          찰에 선방이 없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계사에 지금은 없
          어진 정화기념관 2층 큰방을 선방으로 만들어 중앙선원이라 이름 붙이고

          정진을 시작했다.

           조계사 신도들뿐 아니라 주변 불자들의 반응이 한 달 만에 확 달라졌다.
          수행을 본분으로 하는 수좌들이 조계사를 일신하고 있다는 입소문이 나
          더니 드디어 일간 신문에도 기사가 크게 나기 시작했다. 비구- 대처 정

          화의 후유증으로 조계사는 싸우는 곳으로 알았는데, 수좌들이 여법하게

          수행하고 전법 교화하며 모범적인 생활을 하니 스님다운 스님들이 왔다
          고 시주 공양 보시가 늘어나 조계사 재정도 튼튼해졌다. 한 달도 되지 않
          아 일어난 큰 변화의 바람이었다. 서암스님은 당시 상황을 회고담에서 이

          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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