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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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4. 김정희 서 판전 현판.
다시 판각하여 속간하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자획이 마모되어 인출
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1855년에 남호영기南湖永奇(1820〜1872) 대율
사가 봉은사에서 여러 고승들과 논의한 끝에 『화엄경』을 판각하기로
하고 1년 만에 경판을 새기고 이를 보관하는 판전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서산대사 이후로 조선 불교는 임제종臨濟宗을 정통으로 하고 『화엄경』을
중심으로 공부해 왔는데, 그 흐름에서 『화엄경』 판각 간행불사가 이루진
것으로 보인다.
판전에는 불교에도 깊은 조예를 가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선생이 쓴 ‘판전板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852년 오랜 유배에서 풀려
나 과천의 과지초당瓜地草堂에서 말년을 보내던 추사선생은 71세이던 1856
년에는 봉은사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때 영기화상의 부탁을 받고 병
중에서 이 글씨를 썼고, 그해 10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원래의 현판은 보존을 위하여 따로 보관하고 있고 현재는 모각한 것이
걸려 있다. 병고와 나이의 탓도 있었겠지만 글씨에서 기교가 배제되고 서
법에서 말하는 골기骨氣를 강하게 하여 해서楷書로 썼다(사진 14). 이 현판
글씨를 추사선생이 이세離世하기 3일 전에 썼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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