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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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원산역 플랫폼.
             느냐. 여기에는 사연이 좀 있습니다. 피난을 와서 나는 얼마 있다가 입산

             해서 스님이 되어 세속하고 인연 없이 살았지요.

               그런데 부친하고 내 위에 형(채정수 동아대 교수), 저 이렇게 부산으로 피난
             와 있었는데, 이 피난민들이 모두 호적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아
             버지와 형님이 호적을 만들어 올리는데 산중에 있는 제 것까지 같이 올렸어

             요. 그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형제라도 다른 형제 생일을 확실하게 몰랐던

             것이지요. 그러니 형이 호적에 올리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생일
             이라는 거 사실은 숫자놀음 아니냐? 그래서 그때, 좋은 날 가려서 올렸다.”
             는 거예요. 형은 사월 초파일을 자기 생일로 하고, 내 생일은 삼월 삼짇날

             이 괜찮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잘했다고 그랬지요. 뭐, 가을 염소가 봄

             염소가 된 것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생일은 1931년 3월 3일생, 이렇게
             됐습니다.



                개항지 원산에 정착하게 된 사연



             ▶ 부모와 형제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형제는 여덟 명이었어요. 우리 어머니께서 여러 자식들을 낳아 기르시

             느라 고생 참 많으셨어요.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늙은 나이에도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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