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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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그래서 사실 이것은 성문의 궁극적 성취인 아라한과에 해당한다. 그
만큼 천태의 구상은 거대하다. 미혹이 사라진 지점이 여정의 마지막도 아
니고 중간도 아니고 준비 단계라니!
초주견성과 분파분증론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본격 여정이 시작된다. 그 상대는 인지하기 어려
운 미세한 무명의 담장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일과 같다.
이후의 전체 42지위가 이 보이지 않는 담장을 깨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
10신 이후 진입하는 10주의 최초 지위는 특히 중요하다. 이 초주의 지위에
서 견성이 일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견성한 뒤 42단계를 거치
면서 조금씩 장애를 타파하고 그만큼의 불성을 깨달아 나가는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분파분증分破分證이 그것이다. 장애를 조금씩
부분부분 깨트린다는 의미에서 분파分破이고, 그만큼의 불성을 깨닫는다
는 점에서 분증分證이다. 그러니까 천태의 시스템에서 볼 때 초주의 견성
은 본격적 여행의 출발점이다.
화엄에서도 초주에 견성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다만 화엄의 견성은
그 수준에 있어서 천태의 견성과 판이한 차이가 있다. 천태의 견성은 표층
적 장애를 완전히 타파한 끝에 일어나는 최초의 실질적 깨달음, 즉 증오證
悟이다. 이에 비해 화엄의 견성은 믿음과 이해를 강화한 끝에 일어나는 이
해적 깨달음, 즉 해오解悟이다. 그러니까 10신을 거쳐 초주에 진입하면서
해오로서의 견성을 성취하고 이에 바탕하여 실질적인 깨달음을 점차 강화
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견성에 대한 천태와 화엄의 규정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두 교파의 초주견성론을 일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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