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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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김 회장이 “선방 짓는데 얼마나 필요한가요?”
하고 묻자, 고우스님은 세상물정을 모르고 “한 천만 원이면 안 되겠습니
까?”하고 얼떨결에 말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김 회장은 서울로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쌍용그룹 사람이 천만 원을 가지고 왔다.
그래서 쌍용그룹 김 회장의 시주금으로 선원채를 52평으로 제법 넓게
지었다. 선방을 다 지었는데 돈이 좀 남아서 화장실을 더 지었다. 이 봉암
사 선방을 보고 오가는 스님들은 저런 건물을 어떻게 천만 원으로 지었느
냐고 2~3천만 원은 들어야 한다고들 했다.
실은 고우스님이 이 선방채를 짓는 데 돈을 아낀 방법이 있었다. 경북 북
부 지방에는 한옥이 많았다. 한옥 중에 선방으로 쓸 집을 싸게 사서 목재
를 재활용하고 새 기와를 올려 52평짜리 선방을 지은 것이다. 목재 중에
낡은 것은 새것으로 바꾸었는데, 돈을 절약하기 위해 봉암사 사찰림의 나
무를 몰래 베어다 활용했다. 이렇게 알뜰하게 시주금을 아껴서 불사하니
힘은 들어도 불사가 원만했다.
봉암사 조실로 서암스님을 모시다
이렇게 봉암사에 선원을 새로 짓고 20여 명의 수좌들이 한 방에 모여
서 정진하게 되니 비로소 규율도 서고 정진 분위기가 갖춰졌다. 선방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봉암사는 구산선문과 결사도량의 면모가 갖춰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선원을 재건한 고우스님은 봉암사에 선풍을 다시 일으키려면 선
지식을 조실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봉암사는 서옹스님이 종
정으로 취임하신 이래 조실채가 비어 있었다. 서암스님은 가까운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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