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4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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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였다고 한다. 어릴 때 생부에게 한문을 배웠고
                             11세에 대포 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만주로 이
                             주할 생각으로 함경남도 안변까지 갔다가 다시 돌

                             아온 뒤 학업을 계속하여 졸업했다.

                               1931년에 서울로 올라왔고, 다음해 4월 14일에
                             18세의 나이로 봉선사에서 출가했다. 이때 대허태
          사진 1. 이재열.
                             오大虛泰旿를 은사로, 운허용하耘虛龍夏를 계사로 하
                             여 사미계를 받고 법명을 기환基幻이라고 했다. 이

                             후 1935년 4월까지 3년 동안 봉선사의 강원에서 수
                             학하는 한편 초등과·중등과 교과를 마치고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봉선사의 지원을 받아 1936년 2월 일

                             본으로 건너가 아이치현의 임제종 묘흥선림妙興禪
          사진 2.  이종익. 일본에 유
              학 시절 두 사람은     林과 오사카에서 1년간 공부했다. 1937년 귀국 후
              함께  자취생활을
              했다.            에는 서울의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했고 개운사
                             에서 박한영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1938년에는 이

          름을 이석불화李釋佛化로 바꾸고, 1939년 9월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도쿄
          의 니혼대학 전문부 종교과에 입학하여 일본의 교육제도를 연구했다.
           이재열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오사카에서 일생의 동지이자 지음知音이

          된 이종익을 만났다. 이종익은 1933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출가했고, 1938

          년에 오사카에 왔다가 다음해 교토에 있는 임제종 전문학교(현재 하나조노대
          학)에  들어갔다.  이후  다시  도쿄의  다이쇼대학  불교학과에  편입했다가
          1944년 졸업과 함께 귀국했다.

           이재열이 두 번째로 일본에 유학을 갔던 도쿄 시절에 두 사람은 함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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