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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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1950년대 불교정화 당시 비구들의 행진 모습.
가나 학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불분명한 정체성 때문인지 그의 목소
리는 점차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이재열은 1981년 3월 19일 세상을 떠났는데, 49재 추도식 때 평생의 동
반자였던 이종익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해방 이듬해 11월 즈음에 『조
선불교사의 연구』라는 400쪽의 유인물을 발표한 것은 실로 그의 피와 땀
의 결정으로서 큰 개척이요 발명이었음을 안목 있는 몇몇 학자들은 확인
한 바였습니다. 그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35년여 동안 부단히 그 과업에
심혈을 쏟아온바 …… 한국학계에서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독특한 경
지를 개척했지만, 그의 학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논평할 이조차 매우 적다
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조계종 보조종조론을 끝까지 고수하다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에는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관련한 종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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