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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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동하고 보조종조론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같은 해 8월과 9월에 열
린 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에서는 ‘불교 조계종 헌장’을 채택했는데, 여기에
는 “신라 선종 사굴산파 조사 범일을 원조遠祖로 하고 고려 조계종조 보조
지눌을 종조로 한다.”고 하여 보조종조론을 골자로 하는 종헌 개정안을 수
립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 측의 반발이 있었고 종조 논란이 펼쳐지게 된다.
결국 종정이던 만암이 보조종조설에 대해 조상을 바꾸는 ‘환부역조’라고
비판하며 종정직을 사퇴하여 보조종조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1962년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면서 태고종조설이 그대로 유
지되었고, 초조 도의, 중흥조 태고보우, 중천조 보조지눌의 복합적 형태로
귀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대에 들어 원종, 임제종, 조계종 등의 종명이 쓰였고, 종조에 대한 여
러 주장이 제기되며 역사적 정통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종조 논의는
크게 보면 전통적 태고법통의 권위를 내세우거나 보조지눌의 역사적 위상
에 주목하는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한국불교 연구의 대표적 학자였던
권상로, 김영수 등은 기본적으로 조선 후기 태고법통의 정통성을 인정했
다. 반면 보조유풍의 계승을 주창한 송광사의 금명보정 이후 이재열과 이
종익 등은 조계종과 보조종조설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한국불교의 정체
성에 대한 이해가 한층 무르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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