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P. 29

적 정신작용을 내려놓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하여 감지하기 어려
             운 깊은 무의식의 미세한 분별의식인 삼세육추三細六麤까지 소멸하는 차원
             에 이르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선에 대한 법문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

             로 이 때문일 듯하다. 삼세육추라니! 아뢰야식이라니? 용어도 낯설고 그

             것을 소멸한 차원이 어떤 것인지 도대체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
             서 읽고 쓰기의 전문가들인 교수님들조차 ‘머리가 빠질 뻔 했다’고 하는 것
             이다.




                앎과 이해를 넘은 자리, 수능엄주


               아무리 정밀한 이해라 해도 한 번의 무심無心 실천보다 못하다는 것이 선

             문의 입장이고 보면 선에 대한 지식인들의 불편함이 당연한 일일 듯도 싶

             다. 당장 아난존자가 그랬다. 불교의 역사에서 부처님의 설법에 대한 지식
             과 이해의 일인자를 꼽자면 당연히 아난존자가 먼저다. 그는 걸어다니는
             경전이었다. 그럼에도 아난존자는 마등가 여인의 유혹에 빠진다. 여기에

             서 아난존자는 자신이 자랑하던 불법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전혀 힘을 쓰

             지 못하는 것을 체험한다.
               이때 아난존자를 구한 것이 수
             능엄주다.  수능엄주는  분별과

             이해를 내려놓고 무심으로 들어

             가도록  이끄는  다라니다.  그러
             니까 지식과 이해의 선수였던 아
             난존자가 자신의 주특기인 바로

             그  지식과  이해를  내려놓았을              사진 1. 성철스님의 범어음역 능엄주. 사진: 법보신문.



                                                                          27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