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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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그리하여 수능엄주가 이끄는 무심의 차원에 온몸을 던졌을 때,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지식과 이해는 무심과 상극이
          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말한다. “다문지해多聞知解를 사갈蛇蝎같이 멀리하

          고 실증實證에만 노력해야 한다.”라고. 알고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깨달음

          의 씨앗을 죽이는 비상과 같고 짐독鴆毒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일까? 알고 이해하는 길을 걸어 불법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경전을 읽다 보면

          불법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열리는 일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열린 눈을

          가지고 참선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의 완성형이 바로 돈
          오점수론이다. 이해적 차원의 깨달음[解悟]에 바탕하여 점차적으로 수행해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이해적 차원의 깨달음이 바로 돈오로서 이 돈오

          를 체험한 후 점차적인 닦음을 통해 깨달음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약

          도다.


            경전을 태운 덕산스님




           그렇다면 여기에 하나의 얘기가 있다. 덕산스님은 『금강경』의 권위자
          로서 걸어다니는 경전 그 자체였다. 스스로 최고의 주석서라고 자부하는
          『청룡소초』를 완성하였고, 이로 인해 ‘주금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덕

          산스님은 이것을 짊어지고 천하의 선지식과 한판 안목의 고하를 가리는 도

          장깨기에 나선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떡 파는 노파에게 일패도지하
          고 만다. 이후 용담스님을 찾아갔지만 역시 연전연패였다.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어떤 탁월한 견해도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특히 용담스님이 촛불을 내어 비춰주고 덕산스님이 그 빛에 의지하려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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