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P. 32

내놓은 확실한 결론이라고 보아야 합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경전공부를 배격하는 성철스님의 법문에 제기되는 한 가지 비
          판이 있다. 『선문정로』는 최소한 깨달음의 문턱에 선 고급 수행자를 위한

          법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완전한 깨달음만을 강조하는 이 법문이 발심수

          행자에게 무슨 의미를 갖느냐는 것이다. 경전공부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
          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것이 키 큰 나무,
          키 작은 풀에 고루 적용되는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미롭

          게도 그 메시지는 동일하다.

           “그대가 뿌듯해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독약이다. 빨
          리 내려놓아라.”
           경전공부가 뿌듯함으로 연결되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괜찮을 듯하다. 탐

          진치는 그 장애성과 비도덕성을 스스로 안다.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숙제가 분명하다. 그런데 경전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내려놓기는 쉽지 않
          다. 장애성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숨어서 작용하는 지속성이 강한 것은
          더 큰 문제다.

           생각해 보면 범부나 발심 수행자에게는 물론이고, 높은 수준에 도달한

          법신보살에게도 의지하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각자에게 전부인 바로 그
          것을 지금 당장 내려놓으라는 것이 선의 요구다. 내려놓는 순간, 그만큼의
          깨달음이 일어난다. 마등가는 음녀였다. 그런데 깨달았다. 그녀가 지향하

          는 것은 아난존자의 빛나는 모습이었다. 그녀 역시 그만큼의 아름다운 용

          모를 갖춘 존재였다. 아름다움이 그 존재의 근원이었고 최고의 가치였다.
          그것을 내려놓았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내려놓았다는 말이 된다. 그래
          서 깨달았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가장 훌륭한 제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깨



          30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