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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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원의 주석과 입적



               황벽의 인가를 얻은 후에 의현은 진주鎭州(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정정시正定
             市) 동남 호타하滹沱河 변상의 작은 선원인 임제원臨濟院에 오래도록 주석하

                                            17)
             였기 때문에 임제臨濟라고 칭하였다.  그 당시 수많은 학인을 제접하여 일
             가의 종풍宗風을 이루었다. 후에 대명부大名府(현 하북성河北省 감단시邯鄲市
             대명현大名縣)의 흥화사興化寺에 주석하다가 어느 날 질환이 없이 의복을

             수습하고 선좌禪坐에 기대어 입적하였다. 입적 시기는 대부분 자료에서

                               18)
             는 함통咸通 7년(866) 이라고 하지만 『임제혜조선사탑기』에서는 함통 8
                   19)
             년(867) 이라고 한다. 시호諡號는 ‘혜조선사慧照禪師’라고 하고, 탑의 명칭
             은 ‘징령澄靈’이라고 하였다.

               『경덕전등록』에는 임종에 앞서 설했다는 다음과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싣

             고 있다.


                  沿流不止問如何  흐름을 따라 그치지 않음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眞照無邊說似他   참된 비춤은 끝이 없다고 그에게 말하리라.

                  離相離名如不稟  상相을 떠나고 이름도 떠나 받지 않음과 같으니
                               20)
                  吹毛用了急須磨   취모검吹毛劒을 다 썼다면 급히 갈아 두어라.





                『
             17)  臨濟慧照禪師塔記』, [宋]頥藏主集, 『古尊宿語錄』 卷5(卍續藏68, 35a), “旣受黃檗印可, 尋抵河北鎭
                州城東南隅臨滹沱河側小院住持, 其臨濟因地得名.”
             18)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506c), “師無疾, 忽一日攝衣據坐, 與三聖問答畢,
                寂然而逝, 時唐咸通八年丁亥孟陬月十日也.”
             19)  臨濟慧照禪師塔記』, [宋]頥藏主集, 『古尊宿語錄』 卷5(卍續藏68, 35a), “時唐咸通八年丁亥孟陬月
                『
                十日也.”
             20)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2(大正藏51, 29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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