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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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라는 절망적인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옵니다. 이 언저리가
공부의 즐거움이자 무서움입니다. 그래서 이 언저리를 읊은 다음의 선시
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산호 베갯머리에 흐르는 눈물,
절반은 그대 생각 절반은 그대 원망 5)
나는 이 공안을 『가려 뽑은 송나라 선종 3부록』 ② (장경각, 2019)에서 처
음 읽었습니다. 한 편의 연시戀詩로 읽어도 빼어나지만 수행시修行詩로 읽
어도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한 표현입니다. 좋은 시는 이처럼 여러 가지 의
미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와 문학은 원래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연리지連理枝입니다. 어떤 종교
든 널리 보급되고, 독자적 풍격을 형성하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
는 것은 그 종교가 가진 문학적 가치에 의지합니다.
모과나무와 보낸 한나절은 축제와 같았습니다. 떠나기 싫었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소요헌逍遙軒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알바로 시자가 설
계한 소요헌은 긴 상자와 같은 두 개의 구조물을 Y자로 연결한 콘크리트
공간입니다. 건물 전체가 단순화, 상징화, 추상화된 형태를 보여줍니다.
소요헌 안에 작은 중정中庭이 있습니다. 정향나무, 미선나무, 미스킴라
일락 등 향기가 좋은 식물이 심어진 공간입니다. 우리는 이 공간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작디작은 정원이지만 무한을 느끼게 해 주는 공간입니다. 거
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그만 정원의 생명력을 극대화시켜 줍니다. 육
5) 釋惟一, 『宋詩紀事』 卷九二 : “珊瑚枕上兩行泪 半是思君半恨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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