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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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때 멀리 전라남도 보성의 보성보통학교 교
             사가 되었고, 1922년에는 대구의 수창보통학교
             로 옮겼다. 또 같은 해에 천도교에서 펴내는 잡지

             『개벽』에 한국 미술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했고,

             1924년에는 철학에 관한 그의 첫 연구라 할 수 있
             는 「퇴계의 교육사상」을 발표했다. 1926년에는
             고등보통학교 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대구고

             등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                               사진 1. 박종홍(1903∼1976).

               그런데 대구고등보통학교는 앞서 1916년에 다
             카하시 도루高橋亨가 교장으로 부임했던 학교이다. 다카하시는 당시 영남
             지역의 고문헌을 집중적으로 조사·수집했는데, 그는 의병장 집안에 『퇴

             계집』이 있는 것을 보고 조선 유학을 연구하기로 뜻을 세웠다. 다카하시는

             1926년에 정식으로 개교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교수가 되었고 조선
             사상사와 문학사 등을 강의했다. 경성제대는 일제 강점기 때 국내 유일의
             대학으로서 교수진은 일본인이었고 학생도 대부분이 일본인으로 한국인

             의 수는 매우 적었다. 인문학계에서는 국문학의 이숭녕李崇寧, 이희승李熙

             昇, 사학의 신석호申奭鎬, 유홍렬劉洪烈, 그리고 철학에서는 고형곤高亨坤 등
             이 대표적인 경성제대 출신자이다.
               다카하시 도루의 영향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박종홍

             은 1929년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칸

             트로 상징되는 독일 관념론 철학과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등을 공부했다.
             1933년에는 ‘철학하는 것의 출발점’에 관한 논문을 썼고, 이듬해 졸업 후에
             조교로 근무했다. 당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박종홍은 1935년 이화

             여자전문학교의 강사를 거쳐 1937년에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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