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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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법死法인 언어문자의 다문총지多聞總智인 해
오에 현혹되어 영원한 파멸을 자초하지 말고 활연누진豁然漏盡의
대해탈도大解脫道인 원증圓證으로써 활로를 개척하여 미래겁이 다
하도록 불조의 심등心燈을 밝혀서 법계를 비추어야 할 것이다.”
성철스님에 의하면 일체의 문자적 지식과 그에 바탕한 해오를 사갈처럼
미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해오에 현혹되는 것은 영원한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다. 앎과 이해[知解] 자체가 큰 병이다. “글자 한 자 더 배우면 한 글자만
큼의 망상이 더하고, 두 자 더 배우면 두 글자만큼의 망상을 더하게 된다.”
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경전도 보고 참선도 보아야 한다.”는 말과 “책 보지 말라.”는
강령은 서로 충돌하는 일 없이 성철스님의 법문에서 공존하게 된다. ‘한 말씀’
이 있게 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는 이러한 주체적인 독서는 어느 경우나 두
루 통하는 미덕이 된다. 특히 『선문정로』와 같은 선적 담론을 접하는 데 있
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허공장경』에서는 “문자와 이름과 형상이 마구니의 업이고, 부처님 말씀
역시 마구니의 업”이라고 했고, 앙산스님은 “『열반경』 40권이 모두 마구니
의 말”이라고 했다. 잘못은 말에 있지 않고 그 말을 대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사의 말씀을 대하되 말에 묶여서는 안 된다. 누군가 말
에 끌려다닌다면 그 순간 그는 거룩한 가르침을 마구니의 말로 바꾸는 업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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