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P. 37
리적으로 보면 대부분이 정답이다. 그렇지만 말이 아니라 사람이 정답이라
야 한다. 그래서 가지고 온 답은 전부 부정된다. “불법은 그런 것이 아니다.”
는 것이다. 그러한 부정을 반복하면서 답이 나올 수 있는 모든 길을 차단한
다. 그야말로 기진맥진! 말이 다하고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 마음의 바탕
이 드러날 때 수행자는 모든 것이 있는 이대로 완전한 정답[一切現成]임을 확
인하게 된다.
대나무에 돌 부딪치는 소리, 만발한 복숭아꽃의 모양이 진여의 전모를 드
러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드디어 스스로 갖춘 글자 없는 경전을 읽는 입장
이 되는 것이다. 문자와 관념과 의식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
는 순간이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향엄스님은 자신을 위해 법을
설해 주지 않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며 향을 피우고 절을 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해서 성철스님의 두 말, 즉 경전 공부와 참선 수행
을 병행하라는 말과 책 보지 말고 참선만 하라는 말은 상호 충돌하지 않는
다. 그 말하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의 학인이라
면 마땅히 눈빛이 책장을 뚫을 정도로 경전의 연찬에 매진해야 한다. 사회
생활을 하는 불교인이라면 관련 서적을 두루 읽고 선지식의 법문을 널리 청
취해야 한다. 성철스님은 선사로서 여기에 한 가지를 얹는다. 참선해라. 그
냥 경전 공부만 한다면 그것은 신주 없는 제사다. 참선을 함께해야 신주를
모시고 드리는 제사라 할 수 있고 그래야 공부에 영험이 있다.
이에 비해 참선으로 결판을 내고자 한 수좌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간
절히 알고자 하는 마음 말고는 숨조차 쉴 수 없도록 모든 길을 차단하여 은
산철벽銀山鐵壁에 스스로를 가둬야 한다. 성철스님은 선문에 들어온 사람들
에게 말한다.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