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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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이런 노력으로 결국 군인들도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고우스님은 그때 충격과 배신감이 매우 컸다. 당시 군인들의 꾀
          임에 넘어가 서명을 주도하던 한 국장스님은 총무부장인 고우스님께 “자

          기가 원하는 절 주지를 주면 서울에 있는 자기 절을 스님께 드리겠다.”고

          거래를 제안하기도 했다. 종단 소임을 공심公心으로 보지 않고 자기 개인
          의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는 이가 군인들과 내통하는 모습을 보고는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고 크게 실망했다. 그 스님은 결국 훗날 종단 개혁 스

          님들에 의해 멸빈滅擯(승적을 박탈하여 쫓아냄)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봉암사에서 법난 수습을 위해 서울에 온 수좌들은 똘똘 뭉
          쳐 총칼을 앞세운 군인들의 간섭과 압력도 막아내며 두 달 만에 종헌 개정
          을 성취하였다.




            신망받는 분들을 본사 주지로 모시다


           고우스님이 맡은 총무부장은 본말사 인사권을 가진 곳이었다. 스님은

          당시 법난으로 실추된 종단 명예와 분위기 쇄신을 위해 물의를 빚은 본사

          주지 스님들에게 사표를 받고는 종단에서 신망 받는 대덕 스님들을 주지
          로 모셨다. 월정사에 탄허스님, 직지사에 관응스님, 동화사에 범룡스님,
          고운사에 근일스님 등 덕망 있는 스님들이 교구본사 주지를 맡게 하였다.

          고우스님은 총무원장 탄성스님과 상의하여 이렇듯 수행과 교화에 사표가

          될 분들을 교구본사 주지로 모시어 종단 분위기를 쇄신했다.
           또한 현대 조계종단 역사에서는 처음으로 출가하는 스님들의 수계 절차
          를 규정한 단일계단법을 제정해서 초대 전계대화상으로 자운스님을 추대

          하고 1981년 2월 27일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단일계단 수계식을 최초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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