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P. 58
합의가 이루어졌다. 물론 자천
타천으로 몇몇 훌륭한 스님들이
거론되었지만, 성철스님을 추대
하자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성철스님은 종정
사진 5. 1981년 1월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성철스님
과 성철스님을 추대한 자운스님.
자리를 거절하셨다. 당신이 출
가해서 참선하면서 일체의 자리에 나서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는 것이다. 그
래서 석주스님, 자운스님, 서암스님, 광덕스님 등 여러 원로스님들이 찾아
가서 강하게 설득했다. 특히 자운慈雲(1911~1993) 스님은 성철스님에게 사
숙師叔이 되는 어른이나 봉암사 결사를 시작한 4인의 결사 도반이었고, 또
1966년 성철스님이 문경 운달산 김용사에서 해인사 백련암으로 들어오게 하
였으며, 총림이 만들어지자 초대 방장으로 추대한 주역이었다. 이런 인연의
자운스님은 거절하는 성철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종단이 어려운 때
이니 스님은 이름만 걸어 두라.” 그러자 성철스님은 하는 수 없이 “일체 자
리에 나가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는 수락했다.
이렇게 하여 1981년 1월 10일 조계종 원로회의는 종정에 해인총림 방장
성철性徹(1912~1993)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그리고 새 총무원장에는
마곡사 주지 성수性壽(1923~2012) 스님을 선출했다. 당시 봉암사 조실 서암
스님은 후일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981년 정초, 한국 불교는 드디어 성철이라는 거대한 정신적 스승
을 탄생시키며 깨어났다.”
- 『서암큰스님 회고록 _ 그대 보지 못했는가』, 정토출판, 127쪽.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