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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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응와 이원조 고택.

             의 유적도 정비하고 스스로 「동계선생대정적려유허비명桐溪先生大靜謫廬遺
             墟碑銘」을 짓고 뛰어난 솜씨로 직접 글씨를 써서 비를 세웠다. 조선시대 말

             에 학문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에서도 중심을 이룬 ‘한주학파寒洲學派’를 형

             성한 거유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1818~1886) 선생과 그의 아들 대계大溪 이
             승희李承熙(1847~1916) 선생도 이 집안사람들이다. 나는 어릴 때 대계선생
             이 지은 『정몽유어正蒙類語』로 글자를 배웠다.

               경북 성주시 ‘한개마을’에는 이들이 남겨 놓은 역사적 발자취들이 선명

             하게 남아 있다. 이원조 선생이 잠시 성주로 낙향했던 시절에 성주목에 속
             해 있던 청암사의 중수기를 지은 셈인데, 거기에는 필시 어떤 연고가 있었
             으리라 짐작된다(사진 10).

               대웅전에 올라서면 성당선생이 해서로 쓴 ‘대웅전大雄殿’ 현판이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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