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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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적 형이상학을 극복하고 존재 현전의 자기 현시를 추구한 하이데거
의 후기 사상에 입각하여 해명하려고 했다. 보조지눌의 돈오점수 등을 존
재론적으로 고찰하려 한 것이 하나의 사례이다. 그의 방법론은 스스로 현
전하는 존재를 집념이나 망념이 아닌 무념으로, 그대로의 존재를 단적으
로 직관해야 한다는 것으로, 망견을 단절하는 무념의 일념에서 존재와 사
유가 일치하게 된다.
그의 저작인 『선의 세계』는 서양철학과 선불교를 결합한 뛰어난 연구이
지만, 내용이 너무 어렵고 전문적이어서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그 주된 이유는 ‘불교를 아는 사람은 후설과 하이데거를 모르고 후설과 하
이데거를 이해하는 사람은 선불교를 모르기 때문’으로, 바꾸어 말하면 이
책은 그만이 도달할 수 있는 독보적 경지의 연구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고형곤은 말년에 『금강삼매경』을 번역하며 그 가치를 높이 샀는데,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이라고 전제하고 『금강삼매경』
이야말로 불교의 진리를 온전히 담고 있어서 이를 제대로 읽으면 불교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19세기 선 논쟁, 추사를 불러내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를 거치면서 불교학계에서는 19세기 선 논쟁
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무렵은 사상 면의 내재적 발전론의 시각에서 근
대를 지향하는 전통 학술로서 실학이 학술 담론으로 떠오르던 때였다. 그
렇기에 19세기의 대표적 학자 중 하나였던 추사 김정희가 불교계의 선 논
쟁에 직접 뛰어든 사실은 조선시대 불교에도 사상사의 영역에서 괄목할 만
한 논쟁이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19세기 선 논쟁 연구의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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