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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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 이는 한기두였지만 여기에 철학자 고
                                 형곤이 참여함으로써 불씨를 지폈다.
                                   1975년에 발표한 「추사의 백파망증 15조에

                                 대하여」는 김정희가 백파긍선의 설을 근거 없

                                 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비판하며 15개 항목에
                                 걸쳐 반박한 편지 내용을 분석한 글이다. 고형
                                 곤은 긍선의 『선문수경』에서 임제 제2구의 삼

                                 현三玄을 여래선이라 하고 여기에 법안종, 위
          사진 4.  고형곤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소광희의  『청송의     앙종, 조동종을 소속시킨 것은 잘못임을 지적
              생애와    선철학』(운주사,
              2014).             하고 임제 삼구로 삼처전심 등을 해석한 것 자
          체가 당시에 물의를 일으켰다고 보았다. 또 긍선의 삼종선은 조사선과 여

          래선을 격외선이라 통칭하고 의리선을 별도로 두는 등 전통적 이해와 달

          랐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이어 선문 오가를
          조사선과 여래선으로 나누어 배정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의 체계 안에 묶
          어 두려는 긍선의 분류 벽에서 기인한 잘못된 이해라고 결론지었다.

           1978년의 「추사의 선관」에서는 김정희가 긍선에게 보낸 편지 3통, 또 초

          의의순과 교신한 편지 38통을 분석하여 추사 김정희의 선에 대한 인식을
          재검토했다. 그는 “부처의 말과 뜻이 모두 화두라면 왜 삼처전심에는 한
          구의 화두도 나오지 않는가?”라는 김정희의 의문을 들어 설명하고, 김정

          희가 긍선의 비문에서 “서로의 논란은 세상 사람들이 헐뜯는 것과는 다른

          우리 두 사람만이 아는 대목이다.”라고 썼음을 언급했다. 끝으로 김정희의
          비판 내용에도 오해나 실수가 있지만 ‘직절입묘直截入妙의 선객禪客’의 면모
          를 가졌음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고형곤의 이 논문들은 이후 선 논쟁의

          의미와 유불 교류를 다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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