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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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돌아오다


           성철스님의 종정 법어가 세간에 큰 화제가 되고 불교의 위상이 다시 회

          복될 기운이 보이자 고우스님은 참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봉암

          사에서 지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황당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스
          님은 위기에 빠진 종단을 구하고자 온갖 고초를 겪으며 고생해서 수습하
          고 종단 빚도 다 갚았다. 명분에 따른 인사도 하고 다방 출입을 금할 정도

          로 청정하게 총무원 소임을 살았다. 그런데 「불교신문」에 수습한 수좌들을

          ‘워커 앞잡이’라 비방하는 글이 실린 것을 보았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총무원에 올라간 수좌들이 폐간된 신문사를 군부
          의 온갖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불교신문」이라 이름을 바꾸어 발행했다. 회

          사가 지고 있던 막대한 빚도 다 갚고 직원들의 월급까지 올려주고 왔는데

          그런 기사가 실린 것을 보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려운 때에 총무원 소임을 맡아 총무원 부채도 해결하고, 종단에 처
          음으로 계단위원회와 사미·사미니 단일계단을 만들고, 중앙승가대학 설립

          까지도 도왔다. 당시 학인들이 찾아와 학교를 세울 도량을 구해 달라고 하여

          개운사에 중앙승가대학이 설립되도록 적극 도왔다. 가장 큰 문제는 종헌 개
          정이었다. 군부의 온갖 간섭과 협박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총무원 중앙집중
          제를 관철시켰다. 종단 안에서 군인들과 내통하며 이간질하던 이들이 자기

          들 뜻대로 주지 인사 등을 안 해 주고 떠나자 이제는 뒤에서 ‘워커 앞잡이’

          라고 비난한 것이었다. 워커란 군화이니 ‘군인 앞잡이’란 비방이었다.
           부처님 법이 훼손당하는 법난의 위기 상황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총무
          원 살림을 맡아 살다 내려왔다. 나름의 보람도 있었으나 종단 내부에 대한

          실망도 컸다. 특히 출가 승려가 부처님 가르침보다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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