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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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기에 서울대를 나온 영민한 활
성스님을 만나자 말이 통해서 가
까워졌다. 특히 법난 수습을 위
해 서울 총무원에 올라갈 때도
같이 동행하였고, 총무원에서 법 사진 3. 고우스님의 도반으로 초기경전 연구의 선구자
인 활성스님.
난 수습을 할 때에도 세속 사정
에도 밝았던 활성스님의 안목은 고우스님 등 수좌들의 한계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이렇게 하여 고우스님과 활성스님은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법난 수습을 위한 총무원 생활을 하면서 활성스님은 종단의 현실
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승단에 크게 실
망하게 된다. 그래서 활성스님은 선방을 떠나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공
부하기 위해 한문 경전이 아닌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초기 경전을 공부
하게 되었다.
활성스님의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면서 고우스님은 부처님 가르침과는
다른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인 인식을 같이했다. 하지만 선禪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바라본 점에서
는 견해 차이가 있었다. 해제 철이 되면 고우스님과 활성스님은 한 번씩 만
나 밤새도록 법담을 나누었다. 활성스님은 그동안 공부한 초기경전의 부
처님 말씀을 이야기했고, 고우스님은 대승과 선종의 견해로 반박했다. 이
런 견해 차이는 결국 밤샘 논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좌 공부모임 선납회의 창립과 활동
그러나 초기경전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활성스님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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