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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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묵호항(현 동해시, 2012년).
의 움막이나 물방앗간이나 이런 데서 겨우 새우잠을 잤는데 며칠 걸렸는
지 생각이 잘 안 나는구만요. 여기까지는 큰 봉변 없이 그렇게 얻어먹으면
서 갔지요. 그런데 제천에 도착하니 여기도 열차가 없어요. 다시 걸을 수
밖에요. 제천에서 남행하는 길은 피난민들로 큰 길이 꽉 찼어요. 그런데 이
전에 북에 올라가지 못하고 산속에 숨어 있던 인민군 패잔병들이 총으로
위협하는 거예요. 이런 일들 일일이 다 얘기할 수가 없어요. 그들도 피난
민 대열에 섞여 있었어요. 그러자 미군들이 정보를 입수하고는 쌕쌕이라
는 전투기가 날아다녔어요. 피난민 대열을 향해 기총사격을 하기 시작해
요. 그러면 모두 길바닥에 바짝 엎드리기를 여러 번 했어요. 많은 사람들
이 죽었지요. 그때마다 목숨이 저승에 갔다 왔다 해요. 이제 앉아서 이런
얘기하니까 그렇지, 그때는 참 말도 못할 지경이에요.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경상북도 어디쯤인지, 큰 강을 건너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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