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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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이어져 온 본체론을 준수하기 위하여 진여眞如라고 하는
것을 현상의 실체로 삼았다. 유종의 종자계와 현행계는 생멸하는
것과 변화하는 것의 이중세계이다. 지금 움직이지 않고 불변하는
진여와 이 이중세계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물어보면 설명할 방
법이 없다.”
유식불교에서 진여와 종자라는 이중 본체를 가
지게 된 것은 진여의 불변성과 종자의 변화가능성
을 동시에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본체의 ‘불변
성’과 ‘변화가능성’은 서로 모순되므로 이 두 본체는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다. 불교의 본체인 진여에 대
한 이해에서 볼 때, 진여는 무위법이므로 결코 끊임
없이 생성·변화하거나 유행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사진 5. 웅십력의 『신유식
론』 한글판(소명출판, 그러면서도 유식불교는 이러한 성격의 진여가 아라
2007).
야식의 ‘실성實性’과 ‘체성體性’이라고 본다. 따라서
무위법인 진여와 생멸변화하는 현상계의 모습은 서로 뛰어넘을 수 없는 다
른 영역의 것이 되므로, 진여와 현상계의 관계를 설명할 방법이 없게 된다.
이것이 이중 본체가 야기하는 문제이다. 웅십력은 “종자는 종자이고 진여
는 진여이다. 이 이중 본체는 서로 관계가 없고, 진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
라 논리적으로도 확실히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결론지었다.
웅십력은 결국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불교의 유학화라는 제3의 길
을 선택하게 된다. 유식불교에 대한 비판은 실제로는 동일한 성향의 서양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으므로 그에게는 민족적 자존심을 건 작
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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