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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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있어요. 그 부엌이 옛날의 전형적인 부엌이에
요. 높은 천정에 굵은 대들보 서까래가 쭉 그대로
나와 있어요. 오랫동안 불 때 가지고 그을음이 붙
어 있어요. 그때 나보다 먼저 들어온 행자가 하나
있었어요. 석 달 먼저 왔다는데 키가 전봇대만큼 커
요. 내가 들어갔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맞아 주더
군요. 그다음부터 약 1년 동안 부엌 옆에 딸린 후
원 방에서 그와 무릎을 맞대고 지냈어요. 사진 5. 장봉壯峰 김지견金知見
(1931~2001) 박사.
▶그분은 어떤 분이었나요?
그렇게 같이 지낸 사람이 바로 화엄학자로 유명한 김지견金知見 박사입
니다. 세속 나이는 신미생으로 나와 동갑인데. 석 달 먼저 절에 들어왔지요.
그는 고향이 전라도 영암인데 이미 세속 때부터 서옹스님과 인연이 있었어
요. 서옹스님이 피난 시절에 선암사 선방에 계셨어요. 스님께 출가하러 선암사
에 온 겁니다. 둘이 공양주 한다고 참 죽이 잘 맞아 행자시절을 잘 지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는 키 크고, 하나는 작은 게 잘 어울려 산다고 한산寒
山 습득拾得과 같다고 하는 분도 계셨어요. 선암사 1년의 행자시절 에피소드가
많지만 다 할 수는 없고, 몇 가지 별다른 얘기나 조금 하겠습니다.
▶원산에서 부잣집 아들로 사셨는데 행자생활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여름 백중 때 선암사에 들어갔으니 제일 더울 때 아닙니까? 새벽 3시에
목탁 치면 일어나 김지견 박사와 둘이서 공양 준비를 합니다. 선방 수좌
40여 명 계시고 부목들, 기도하러 온 신도들 합쳐서 60여 명쯤 됐어요. 하
루 세끼를 행자 둘이서 하나는 공양주하고, 나는 반찬 장만하고 국 끓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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