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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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지라고 규정하기까지 하였다. 대원경지는 부처의 지위에 진입하면서 단
             번에, 그리고 완전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위
             산스님의 규정은 돈오돈수를 선문의 종지로 삼는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이 문장을 기꺼이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위산스님 역시 제8아뢰야식의 근본무명을 완전히 탕진하여 구경
                  각을 성취해야 참다운 견성이고 이것이 근본 종취임을 밝혔다. 대

                  원경지란 주관적인 상생想生과 객관적인 상생相生 그리고 일체 망

                  상의 근본이 되는 제8아뢰야식까지 완전히 제거한 것을 말한다. 이
                  것이 33조사를 이어온 우리 종문의 종취이고 수행의 극과이다.”



               위산스님은 선문의 『명심보감』 격인 『경책문』을 지었는데 한국 강원의 필

             수과목인 『치문』에도 이것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에 대한 위산
             스님의 영향력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또한 선종사에 회창멸불이라고 불
             리는 당무종의 불교 소멸 정책에 의해 불교가 거의 빈사 상태에 처했을 때

             불법 중흥의 기치를 올린 것도 위산스님이었다. 스님의 활발한 교화는 그

             제자인 앙산스님에 이르러 위앙종의 성립으로 완성된다. 위앙종의 가르침
             은 근엄함과 자세함을 특징으로 하는데, 무너진 선종을 내용적으로 복원
             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었다.

               어떻게 보아도 위산스님의 교화와 위앙종의 성립은 넓게는 불교, 좁게

             는 선종의 중흥을 알리는 표지였다. 우리는 위앙종의 완성자인 앙산스님
             이 선종의 제7조, 혹은 작은 석가[小釋迦]로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
             가 있다. 위산과 앙산 부자의 위앙종 건립이 깨달음의 왕국을 재건하는 사

             건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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