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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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답하시고는 육조스님을 만나 단 한 번의 문답 끝에 깨친 영가현
각 대사 이야기와 마조스님, 임제스님, 대혜스님 등등 조사들이 깨친 이야
기를 몇 시간이나 장광설을 하셨다.
성철스님이 신이 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우스님은 중간에 말을 끊을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몇 시간이 지나 말
씀이 끝나고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옆에 있던 원융스님이 한마디 했다.
“아이코 오늘 시자들이 죽어나겠구나!”
그렇게 성철스님을 뵙고 나와서 해인사를 나서는데 원융스님이 따라와
서는 고우스님 주머니에 봉투를 하나 찔러주었다. 스님이 놀라서 “아니 스
님이 무슨 돈이 있다고?” 하면서 그 봉투를 돌려주려 하니 원융스님이 말
하기를 “아니오!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고 노장이 주는 거요!”라고 했다.
“그래? 하, 이거 영광이네. 성철스님한테 여비도 얻어 보고. 이거 쓰지
말고 표구를 해놓아야 겠네!” 하며 고우스님은 흔연한 마음으로 해인사를
나와서 서암스님이 계시는 봉암사로 갔다.
서암스님의 뜻밖의 모습
봉암사 조실채로 가서 서암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성철스님께 받은 『단
경지침』을 내놓고, “성철스님께 받은 것입니다. 선화자법회에서 『단경』 강
의를 하실 때 참고하시죠.” 하며 드렸더니 노장께서 바닥을 탁 치시고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20여 년 전 김용사 금선대에서 처음 뵌 이래 어떤
분은 고우스님은 서암스님 상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은사처럼 잘 모시
고 살았고, 서암스님 또한 성품이 온화하시고 인격자이시어 한 번도 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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