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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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한다. 이를 통해 하나의 언어적
사태는 보편적으로 이해 가능한 상
황으로 의미화 된다. 그런데 이렇게
범주화에 기초한 모든 해석들은 예
외 없이 언어의 생명을 빼앗는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언어문자
는 실상에 대한 살해행위에 해당한
사진 1. 한용운의 『님의 침묵』.
다. 선사의 말은 더욱 그렇다.
선사의 말은 태생부터가 모순적이다. 선문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표
방한다. 그러니 선사의 말은 선의 기본노선과 충돌한다. 그럼에도 말해야
하는 것이 선사의 운명이다. 선사는 말을 통해 말의 틀을 깨뜨린다. 이독
제독以毒制毒이다. 또한 그것이 언어와 이해의 틀을 깨뜨리는 기능을 주로
하므로 다분히 파격적인 형식을 띄게 된다.
그 특별해 보이는 그 말들은 혹은 몽둥이를 휘두르는 일이 되기도 하
고, 혹은 고함을 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동문서답이 되기도 하지만 동
문동답이 될 수도 있다. 한마디의 종잡을 수 없는 말이거나 장편대론
의 잔소리일 수도 있다. 어쨌든 말로 안 되는 상황을 말로 해결해야 하
는 것이 선사의 설법 현장이다. 매우 유감인 상황이다. 그것이 실상의
순도를 희생하는 일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청법자를 속이는 일이 되
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이 열반에 임한 노래에서 “평생토록 남녀의 무리를 속여 하늘
에 넘치는 죄업이 수미산보다 높다[平生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고 탄식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선사들은 말을 하되 그 말을 원수처럼 여
긴다. 용담숭신 선사가 천황도오 선사에게 법을 구하는 장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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