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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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음


           이러한 ‘사료간’에 대하여 임제의현은 다음과 같이 분별하고 있는데, 먼

          저 ‘탈인불탈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어떤 승려가 묻기를, ‘어떠한 것이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인가?’라고 하자, 선사는 ‘해가 떠올라 비추어 땅이 비단 같

              고, 갓난아이의 드리운 머리카락이 하얀 명주실 같구나.’라고 하였

              다.” 4)


           여기에서 의현은 ‘사람[人]’과 ‘경계[境]’에 대한 개념은 명확히 설하지 않

          고 있으며, 그 설명도 상당히 시詩적이다. 다만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사람’

          은 바로 인아人我를 가리키니 아집我執으로 해석할 수 있고, ‘경계’는 바로
          이법理法으로 법집法執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르게 해석한다고
          해도 선리에 적합하다면 전혀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서 의현이 설하는 “해가 떠올라 비추어 땅이 비단 같고”라는 말은

          ‘불탈경’을 지적하는 것이고, “갓난아이의 드리운 머리카락이 하얀 명주실
          같구나.”라는 말은 바로 ‘탈인’을 가리킨다. 우주의 법계가 마치 해가 떠올
          라 비추어 땅이 비단과 같이 여여如如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법계에 대하여 아집을 발생시키는 상황을 “갓난아이의

          머리카락이 하얀 명주실과 같다”고 묘사했는데, 갓난아이의 머리카락이
          이미 늙은이의 백발로 급변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지독한 아집이




          4)  앞의 책, “有僧問: 如何是奪人不奪境? 師云: 煦日發生鋪地錦, 嬰孩垂發白如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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